이희성 언론영상광고학과 교수 (신문방송국장)

 “젊은 나이에 출세하는 것은 인생에서 피해야할 3가지 불행 중 하나다.” 이 무슨 해괴한 말인가. 성공이란 것은 언제 찾아오든지 좋은 게 아닌가. 성공하지 못한 사람의 괜한 질시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 경구는 사회적인 패배자가 아닌 승리자의 입에서 더 자주 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 패배자의 질시가 아닌 승리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로 받아들여도 좋을 듯싶다. 그런 만큼 뭔가 큰 뜻을 내포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일찍 성공하면 대개 감투의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기 마련이다. 혈기가 왕성한 젊은이일수록 자신에게 주어진 감투를 영원히 자신의 것 인양 착각하고 교만해지기 쉽다. 또한 사회를 피상적으로 접하고 모든 게 쉬워 보일 것이다. 이로 인해 체험을 많이 해야 할 청춘을 그냥 얼렁뚱땅 보내게 된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해야 한다’는 우리 속담과도 어긋난 청춘을 보내게 되는 셈이다. 그 결과 막상 자신의 머리위에서 감투가 사라지게 되면 엄청난 상실감에 빠져들게 되고 옛날의 영광을 재현하기 힘들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젊어서 성공하는 것은 각고의 노력에 의해서 서서히 이룬 것이라기보다는 고시·사시·대기업 입사시험과 같이 어떤 시험 관문을 잘 통과해서 한 순간에 신분이 바뀌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인물들의 부침을 가까이에서 접할 기회가 많았다. 화려한 직장 생활을 하다가 내리막길로 접어든 인물이 있는가 하면, 처음에는 미미한 존재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빛을 발산한 인물도 있다. 대학 1학년 때 만나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고 있는 친구 3명은 후자에 해당되는 인물들이다.

 이중 한 친구는 아예 대학 다닐 때부터 중소기업에서 창업 경험을 쌓겠다고 공언하고 다녔다. 대학을 졸업할 때(1991년)에는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은 지금보다 3배가량 높았다. 그래서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에 입사하는 게 지금만큼 어렵지는 않았다(그 때도 물론 삼성은 최고의 인기 직장이었다). 대기업에 충분히 입사할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을 갖춘 친구였지만, 그는 4학년 2학기 때 중소기업에 입사했다. 몇 년간 중소기업에서 무역 업무를 익힌 뒤 친구는 식당을 차렸다. 식당을 운영하면서 그는 숯 사업을 구상했고 중소기업에서 익힌 무역 실무를 활용해서 처음에는 숯을 수입해서 판매했다. 그러다가 동남아시아 각국에 직접 투자해서 숯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친구의 회사는 국내 숯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두 친구도 중소기업에서 기업 경영에 필요한 온갖 실무를 익힌 뒤 창업해 일자리 걱정 없이 50대를 맞이했다.

 이들에 비해 삼성, 현대, LG, SK 등 대기업에 입사한 친구들은 요즘 좌불안석이다. 언제 밀려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평균 수명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어진 요즘 50대 초·중반에 직장에서 물러나는 것은 끔찍한 재앙과도 같다. 대기업에 입사한 친구들은 초기에는 ‘갑’의 지위를 즐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뾰족한 방법도 없다. 대기업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온갖 맹수들이 목숨을 노리고 있는 정글에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철저하게 분업화돼 있다. 전문성을 기를 수는 있다. 그래서 일정한 규칙이 있는 태권도 시합 같은 데서는 잘 싸울지 모른다. 그렇지만 실제 싸움현장에서는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하지 말라는 태권도 경기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런 정글에서 대기업 출신들은 동네 뒷골목에서 생존형 싸움을 배운 중소기업 출신과는 한판 승부를 겨룰 수 없다. 그래서 대기업 출신들은 자신들의 한계를 잘 알고 대기업을 떠나면 창업보다는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것이다. 그나마도 확실한 ‘발차기 기술’이 있는 일부만이 재취업에 성공할 뿐이다.

 인생은 마라톤처럼 어려운 장거리 경주다. 처음에 스프린터(sprinter)처럼 치고 나갔다가는 이내 지쳐 탈락하는 경기가 인생이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겸허하게 인생을 시작하라는 경구가 많이 생긴 것 같다. 성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네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에 창대하리라(욥기8장7절).’ 미약하게 출발한 뒤 큰 성공을 거둔 사례를 많이 접했지만, 거꾸로 출발이 창대하고 나중도 창대한 경우는 아직껏 잘 보지 못했다.

 대기업에서 부속품처럼 지내다가 튕겨져 나오기보다는 중소기업에서 자기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내공을 키우는 게 인생의 마라톤에서는 현명한 전략이라고 믿는다. 취업을 앞둔 고학년생들이라면 ‘용의 꼬리보다는 닭의 머리가 낫다’는 속담을 한번쯤 되새겨볼만 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