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진 광
 행정학과 교수·대외부총장

 개인마다 개성이 있고, 가정마다 가풍이 있듯이 학교엔 학풍이 있다. 학풍은 쉽게 세워지지도 않지만, 쉽게 무너지지도 않는다. 학풍은 모든 구성원이 만들고, 모든 구성원이 지켜나가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학풍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담는 그릇과도 같다. 졸업생이 사회에서 보여주는 태도와 행동, 재학생들의 생각과 성취도는 미래 우리학교 구성원의 자격요건과 색깔을 결정한다. 과거를 잊을 수는 있어도 없었던 걸로 되돌릴 수는 없다. 우리 학교 동문들이 중요한 이유다. 또한 현재는 미래의 가능성 범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인자이다. 재학생들이 분발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학교가 통합 원년을 마무리하고 2차 년도에 접어들었다. 매년 입학생 수준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올라가고 있다. 학교 분위기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작년에도, 금년에도 훌륭한 교수님들을 모시기 위해 노력해왔다. 학교 시설도 개선되고 있다. 훌륭한 교수님, 우수한 학생, 개선된 교육시설 등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한 분위기가 우리만의 색깔을 낼 수 있을 때 우리는 앞서가는 다른 학교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러나 과거에 안주해서는 우리가 바라는 발전적 학풍을 기대하기 어렵다. 과거와의 단절이 아니라 과거를 활용한 새로운 학풍의 수립을 기대해본다. 이러한 가천학풍은 소위 대학의 3대 기능이라 하는 연구, 교육 및 봉사 영역에서 검증되어야 한다.

 우선 연구 분야에서 가천학풍은 우리만의 논리와 영역을 구축하면서 출발한다. 물론 우리학교가 세계적인 대학들이 일궈낸 연구 분야에 뛰어들어 잘 할 수도 있다. 그러한 노력은 엄청난 돈과 시간을 요한다. 또 돈이 많다고 하여, 오랜 시간이 흘러갔다고 하여 그러한 분야에서 우리의 색깔을 주장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미국의 하버드대학교가 우리학교 주변 지역사회를 연구하여 그 분야에서 우리학교를 앞섰다고 가정해 보라. 거꾸로 우리학교가 미국의 보스톤을 연구하여 하버드대학을 앞장서려고 노력하는 과정을 상상해보라. 따라서 가천학풍은 우선 우리 주변 지역사회에 대한 연구를 통해 세계로 통하는 논리를 확보하여야 한다. 모든 학문 분야는 공간변수를 외면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가천학풍은 우리가 위치한 지역사회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성찰을 통해 수립되어야 한다. 지역사회를 통해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세계를 부분으로 잘라 우리의 지역사회를 만들 수 없다.

 가천학풍은 교육 분야에서도 우리만의 색깔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교육은 ‘무엇을 알려주는 것’ 보다는 ‘무엇을 알아가는 과정’을 터득하는 것이다. ‘무엇’을 담기에는 현재 우리의 현실이 벅찰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을 알아가는 과정’은 마치 압축화일과 같아서 언제라도 필요한 때에 풀어 쓸 수 있다.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인재에게 필요한 것은 ‘현재의 무엇’이 아니라 ‘미래 필요한 것을 알아내는 과정’을 습득하는 일이다. 5톤의 용기에 담을 수 있는 내용물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 무엇(지식)을 담을 것인가? 아니면 필요할 때 필요한 내용을 담을 것인가? 가천학풍이 지향해야 할 교육방식은 이 문제에 답하는 과정에서 수립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엔 바람직하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대학교정이 술로 난장판이 되고, 담배연기로 찌들어도 늘상 그러려니 하는 관행이 유지되고 있었다. 작년 우리학교 총학생회가 주도하여 ‘가천 스타일’을 선포하고 술과 담배를 교정에서 추방하기 시작한 것은 가천학풍의 색깔을 분명히 해주는 분위기를 창출하고 있다. 남이 하지 못하는 실천을 우선하는 분위기 조성이야 말로 ‘가천학풍’의 색깔이다. 대학교육의 지고한 덕목은 지식과 실천을 이어주는 과정에서 정당화된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다르다면 지식이 협잡군의 도구로 악용될 가능성만 높여준다. 모르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와 의도적으로 남을 해하는 행위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봉사 분야에서의 가천학풍은 포용력을 키우는 과정으로 수립되어야 한다. 세상은 다양한 인종, 문화와 언어, 종교로 구성되어 있다. 서로 다른 세상에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갈등만 남게 된다. 다르기 때문에 함께할 필요성과 가치가 있다. 같기 때문에 함께하는 모임은 외부의 다른 집단에 대해 폐쇄적일 수밖에 없고, 편견과 오만을 키운다. 같기 때문에 뭉친다면 세계적인 일을 도모할 수 없다. 가천(嘉泉)은 ‘아름다운 샘’으로 풀이된다. 아름다운 샘물은 누구의 갈증을 풀어주고 생명력을 유지해줄 수도, 온갖 색깔의 옷감을 깨끗하게 빨아줄 수도 있다. 세상이 다양하기 때문에 ‘가천’이 봉사할 수 있는 독특한 영역이 존재한다. 가천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가거든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과 함께할 수 있는 포용력으로 봉사하라. 그 길이 가천학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