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악수 한번 합시다!” 김대균 선생님은 “신문사에서 왔습니다”란 기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을 맞잡으며 활짝 웃었다. 전통 줄타기의 마지막 촛불이라 불리는 그인 탓에 ‘조심 또 조심’이란 말을 마음속에 되뇌며 찾아갔다가 오히려 “왜 이렇게 주눅이 들었냐”는 말을 들은 기분이었다. 줄 위에서의 삶이 외롭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줄 위에 서면 대화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기자수첩에 그와의 대화를 풀어놓았다.

요즘 시대에 줄광대는 흔하지 않은 삶이다.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가?

어린 시절 최고 놀이터는 내가 자란 용인 민속촌이다. 녹록치 못한 교육을 받은 어린 시절이었지만 그 곳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15살에 이르러 첫 공연을 했고, 20대에 이르러서는 겁 없이 줄을 탔다. 30대가 돼서는 ‘줄이란 무엇인갗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다.
줄을 탄지 30년이 지나 나이가 40에 이르렀지만 아직까지도 답을 알 수 없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과정인 것 같다.

줄과 하나 되어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줄타기를 관람하는 많은 관객은 줄광대의 ‘기예’를 먼저 본다. 그러나 그것은 시각적인 것에 불과하다. 관객의 흥을 위한 줄광대의 재주는 어릿광대, 삼현육각, 재담, 춤 등과 함께 줄타기의 일부일 뿐이다. 줄광대의 몫은 이것들을 제대로 연결시켜 ‘대화’라는 줄타기의 본질을 만드는 것이다. 줄은 단절이 아니라 이음을 뜻한다. 줄광대와 관객의 이음이고 대화이다.

줄광대와 관객의 대화에 어려움은 없나?

줄광대는 줄을 통해 ‘오늘의 이야기’를 한다. 재담에도 급수가 있기 때문에 ‘그냥 이야기’만 해서는 안 된다. 광대답게 풀어내지 못하면 재담은 어림도 없다. 이것 외에도 줄타기는 현장성과 가변성이란 특징이 있다. 말을 하더라도 때를 맞춰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 앞에서 임금님 풍자를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인위적이지 않은, 사다리와 같이 하나하나 짚어가는 교감을 통해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관객은 ‘성찰’을 한다.

줄 위의 광대는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대변할 수 있는가?

줄광대가 줄 위의 끝에 서서 첫 발을 내딛으면 줄의 팽팽함을 느낀다. 줄이 고요한 까닭에 걸음을 옮기는 것이 어렵지 않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갈수록 줄이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탓에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야 한다. 조금 더 앞으로, 앞으로... 반대편으로 몸을 옮기면 다시 줄은 팽팽해진다.
이제 한 사람의 인생을 줄에 빗대어 생각해 보자. 10, 20대를 사는 인생에 흔들림은 없다. 그저 부모님이 벌어주신 용돈에 의지하고, 학교만 열심히 다니면 그만이다. 그러나 인생의 중반부인 30대로 접어들면 인생이란 줄은 머리가 백발이 되기 전까지 심하게 요동친다. 다 늙어서야 인생이란 줄은 다시 단단해지고 팽팽해진다.

줄 위에 올라서 있는 모습이 여유로운데

우리나라 민속놀이 대부분이 위험을 감수한다. 줄타기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에 나도 줄 위에서는 항상 긴장한다. 그러나 그런 모습을 관객에게 보여주면 안 된다. 긴장감을 잘 조율해야 줄 위에서 떨어지지 않고, 줄타기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선생님을 줄타기의 마지막 남은 촛불이라고 말하는데, 줄타기의 침체가 얼마나 심각한가?

내가 무형문화제 58호로 지정됐을 때가 34세 되던 해인 2000년도이다. 최연소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까닭에 많은 일간지에서 내 이야기를 기사화했었다. 많은 기자들이 내게 던졌던 질문이 “감회가 어떠십니까?”였다. “더욱 열심히 하라는 격려라고 생각하고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문화제 증서를 받은 내가 젊다는 것은 줄타기의 현실이 밝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까닭에 기쁘지만은 않다. 나의 스승이었던 두 명인께서 살아 계시다면 88세와 102세이시다. 41인 지금의 나와 세대차이가 엄청나다. 줄타기의 전수가 위태로운 까닭에 정부, 사회에서 줄타기에 대한 관심과 격려를 보내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유야 어쨌든 지금의 암울한 현실은 내 세대에서 끝나야 한다.

줄타기란 무형문화제를 어떻게 보전할 것인가?

전통의 모습 그대로 보전해야 한다. 요즘 사라져가는 것들을 보전하기 위해 ‘퓨전’이라 하여 다른 것과의 접목을 시도하면 사라져가는 것의 이름 정도는 보전할 수 있어도 본질을 지킬 수는 없다. 교본이 없는 문화는 정체성을 가질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본래의 문화적 가치를 지키지 못한 예술에 종사하다보면 어느 날 문득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줄타기를 소재로 한 영화중에 ‘왕의 남자’가 있다. 눈을 잃은 장생이 줄 위에 올라서서 공길에게 “다시 태어나면 광대로 태어나겠다”고 말 한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이준익 감독이 왕의 남자 시나리오를 제작하기 위해 나를 3번 찾아왔다. ‘줄타기란 무엇인갗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리고 영화 시나리오 중 장생이 “다시 태어나면 광대로 태어나겠다”고 말한 장면이 들어갔다. 그것이 내가 말하는 ‘광대의 몫’이다.

줄타기만의 매력이 있다면 무엇일까?

대부분의 평면예술은 관객과 예술가간의 눈높이가 같기 때문에 재미가 없다. 그러나 줄타기는 그렇지 않다. 관객은 줄 아래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광대를 올려다보고, 광대는 줄 위에서 관객들을 내려다본다. 내려다보는 기분이 꽤 괜찮다. 다른 사람은 모를 것이다. 줄 위가 내 세상이고 파라다이스다.

일반인도 줄광대가 될 수 있을까?

노력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노력만으로는 좋은 줄광대가 될 수 없다. 타고난 ‘끼’가 있어야 한다. 재주를 넘는 것 외에, 줄광대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사물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다. 사회의 현상을 하나하나 짚어낼 수 있는 안목도 필요하다.

선생님께서 읽어낸 이 사회의 현상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자기중심을 잃어가고 있다. 물질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고, 정치권과 부자들의 줄을 잡는데 여념이 없다. 자신의 직업이 정치가든 줄광대든 중요한 것은 자기중심을 잃어선 안 된다.
줄타기와 다르지 않다. 줄을 타다 중심을 잃으면 떨어지듯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기중심을 잃으면 인생의 밑바닥으로 떨어진다. 이런 나의 생각이 결코 아집이 아님을 알아주길 바란다.

앞으로 할 일이 많을 것 같은데, 무엇을 계획하고 있나?

국내와 국외에서 공연활동을 많이 해 줄타기를 널리 알려야 한다. 국내에서 꼭 해야 할 일은 ‘교육’이다. 꼭 나와 같은 명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 아이들에게 전통예술이란 문화자산을 느낄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다.
체력적인 부담이 큰 탓에 줄타기는 10년 이상 하지 못할 것 같다. 왜 더 줄을 타지 않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름지기 사람은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할 만큼 했으면 일찍 물러날 줄 알아야 한다. 10년 뒤에는 내 뒤를 이을 아이들의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다.